복수(復讐) 복수(腹水) 복수초(福壽草) 李 森 友 꽃 이름, 제대로 지어 불러줘야지 이게 뭐꼬? 2월 4일 입춘, 수복초가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켜켜이 쌓인 낙엽 이불을 끙끙 헤집고 솟구쳐 올라 화들짝 피었다. 마치 달력을 보고 입춘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가나무와 불두화 덩굴나무 아래 양지쪽에서 금빛으로 방글방글 웃고 있다. 내 가슴속에 창조주 하느님의 얼굴이 노란 꽃으로 각인되는 순간이다. 壽-福! 오래 살고 복 많이 지으라는 꽃이 쏘아 올리는 신호탄이다. 그런데 말이다, 식물도감에는 복수초라고 박혀있다. 일제 치하 때 일본 식물도감에 등재된 이름을 여과 없이 답습 전수 해버린 것이 이날에 이르도록 수정되지 않은 체 거침없이 유통되고 있음이다. 복수라는 단어는 한자(漢字)로 보복한다, 원수 갚는다는 뜻의 復讐, 혹은 배속에 물이 찬다는 뜻인 腹水로 인식되는 게 보통이다. 애써 복 福자 장수 壽자로 그 뜻을 새겨들을 사람은 드물 거다. 예전에 운취를 즐기는 고상한 선비들은 음력 정초에 존경하는 어른을 찾아뵐 때 꽃망울이 터질 것 같은 수복초 화분을 선물로 가져간다고 한다. 차를 끓여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방안 온기로 이 꽃이 살프시 피어나게 하면서 어른의 장수와 복을 빈다는 멧시지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 풍습이 일본에서 깊게 자리 잡으면서 그들의 철학 따라 장수보다 복받기를 우선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여진다. 우리는 오래살고 복 받기를 더 강조했는데 반하여 그들은 길던 짧던 복 받는 것을 우위로 여긴 것 같다. 복받지 못한 삶은 장수할 가치가 없다는 사상이라 할까. 수복초가 개화를 시작한 후 보름이 지나자 관찰로 길섶 양지쪽에 큰개불알풀이 작은 꽃을 피워 앙증맞게 웃고 있다. 작은 씨앗이 개불알같이 생겼다고 개불알 풀이라 했다나? 이름이 諧謔的(해학적)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이 꽃 이름표 앞에서 살짝 웃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귀여운 꽃을 개불알풀이라 부르는 것이 상스럽다고 봄까치꽃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식물원에서도 명찰을 봄까치꽃으로 바꿔 설치해뒀더니 그러자 이 꽃 앞에서 빙그레 웃는 이가 없어졌다. 일본식의 복수초와 같은 듣기에 살벌한 꽃 이름은 막상 팽개쳐두고서 조상 대대로 민초들 속에 내려오는 해학적 이름은 갈아치우려 안달이다. 모순투성이 세상이다. 서양에서는 베로니카라 부른다. 성녀(聖女)의 이름이다. 골고다 언덕을 가시면류관을 쓴 체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오르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흐르는 피땀을 닦아준 여인의 이름이라 한다. 열두 제자들까지도 거들떠보지 않고 산지사방 도피해버린 그 삼엄한 상황에서 사형수의 얼굴에 흐르는 피땀을 닦아 주는 대담하고 자비로운 여인이다. 그 자잘하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들꽃의 이름으로 성녀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니, 놀랍다. 복 ‧수~! 창조주의 작품인 아름다운 꽃을 이렇게 살기(殺氣)를 느끼게도 하는 언어로 마구 불러대면 저들 꽃인들 좋아할까? 순박한 사람들이 이 꽃을 보며 복수초 복수초 하면서 이름을 부를 때 말하는 자와 곁에서 듣는 이들의 심혼엔 또 어떤 흉터가 새겨질지? 이 나라의 언어가 날로 날카롭고 경박하게 몰아가지고 있는 작금의 풍조가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 2022년 월드컵 때 이 나라에는 온통 “붉은 악마라”는 소리가 붉은색 포장을 하고서 사흘드리 방방곡곡에서 난무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6월29일 저녁 대구에서 터키와의 3.4위 결정 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아침에 제2 연평도 사태로 우리 경비정 참수리357정이 북한 함정과의 교전으로 대원 29명 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 당한 사태가 있었다. 경기 시작전에 그들을 애도하는 일동 묵념을 하는데 스타디움을 가득매운 붉은 무리들이 정숙하기는 커녕 웅성대는 꼴본견도 연출된 얄궂은 일도 있었다. 그 이후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대 살생사태를 아는 이는 전무후무한 것 같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사 모임에서 30여 명이 ‘식물 세계와 인간사’라는 나의 강의 청강을 오기로 예약되어 있었는데 한 달여 남겨놓은 어느 날 갑자기 못 올 사정이 생겼다며 취소 전화가 걸려 왔다. 소파수술이 폭주하여 도저히 짬 낼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상을 넘은 4강 진출 현상에 열광하는 붉은 응원 분위기 속에서 흥분된 젊은이들의 탈선들이 저지른 어둠속의 대규모  살생사태였다. 남의 말 하기 그렇게도 좋아하는 언론도 침묵해버린 대학살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걸까? 소리! 말! 세상을 맑게도 추하게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있는가 싶다. 언어가 있어서 만물의 영장 노릇을 하게 되었고 언어가 타락하여 인간세계가 멸망의 위기를 맞게 되는 건 아닌지, 만화구중래(萬禍口中來)라 하지 않았던가. |